슬픈 날
 슬픈 날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 대신 오래 전 끊었던 담배를 피운다.


 눈 앞 5센티 거리에서 내 생기랄까, 남아 있는 인생의 몇 십초가 담뱃재의 모양으로 바직 타 들어간다. 슬픈 날에는 어차피 오래 오래 살고 싶은 마음도 그닥 들지 않기 때문에 상관은 없다.


 그런 때는 유난히 집으로 돌아오는 거리도 길게 느껴진다. 두 개피째의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도 길은 아직 절반 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시린 바람에 외투 속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터벅터벅 걸어 차갑게 잠기 문을 따고 컴컴한 집안으로 들어서면 잠시 그대로 서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균형을 잡아야 한다. 게으른 현관 전등은 그제서야 퍼뜩 들어온다.


 손발을 씻고 이를 닦고 코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다 말고 세면대를 부여잡고 엉엉 운다. 엉엉 소리내서 운다. 눈물의 온기가 차가운 뺨을 칼로 배는 것 같다.


 울고 세수를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노라면 조금 더 작아지고 단단해진 기분이 든다. 내 인생의 남은 슬픔이 조금 줄어들었겠구나 싶어 안도와 아쉬움이 교차한다.
by 오디 | 2008/12/17 18:50 | 잡담 | 트랙백 | 덧글(2)
[천상기] 노부히데의 야망 #64 - 이미가와 멸망 (2)





간스케가 히쿠마성으로 도망쳐 들어간 것과 거의 동시에, 또 하나의 날벼락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슨뿌성 항복 -


영주 이마가와 우지테루가 히쿠마성에 갖혀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다카텐진성마저 함락시킨 오다군이 슨뿌성으로 몰려들자 성 안의 몇몇 장수들이 강경파를 죽이고 성문을 열어버린 것이다. 유구한 이마가와 가문의 거성(居城)으로서 그 역사를 함께 해 온 슨뿌성이 드디어 외세의 군대를 안으로 들이게 되었다.


히쿠마성에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어오던 이마가와 우지테루도 이제는 현실을 직시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으로 우지테루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무너지고 말았다.


그 날 밤, 우지테루는 술에 잔뜩 취한 채 셋사이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그 앞에 엎드려 울며 애원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그런 우지테루를 셋사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참담한 눈으로 내려다 보았다. 울다 지친 우지테루가 그대로 술에 취해 잠들어 시동들에게 들려 거처로 돌아갈 때까지 셋사이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입단속을 한다고 한들, 그만한 일이 알려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벌써 성 안에 모르는 이가 없었다. 날이 밝자 간스케가 찾아왔다.


"벌써 새소리가 들리는군요."


아닌 게 아니라 열어놓은 장지문 밖에는 봄을 맞이하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2월도 중순을 지나고 있었다.


"상대가 다름아닌 셋사이님이시니,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털어놓겠습니다."


"모든 것이라고요?"


"네. 소인이 지난 번 오다군에게 포로로 잡혔을 때, 풀어주는 조건을 약조한 바 있사옵니다. 그 조건이란, 바로 셋사이님을 오다 가문에 암관시킨 다는 것..."


"이보시오, 간스케님!"


"아니, 셋사이님, 잠시만 소인의 말을 더 들어 주십시오. 그들에게는 큰 소리를 쳤지만 셋사이님께서 얼마나 한 마음으로 우지테루공을 모시는지는 그간 셋사이님의 곁에 있었던 제가 더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니 이제와서 셋사이님께 무리한 요구를 할 수는 없사옵니다."


"그것을 알고 있다면 됐소. 간스케님, 그대는 처음부터 오다 노부히데의 인물됨을 알기 위해 당가(當家)에 사관하지 않았소? 그간 그대의 업적을 보아서라도 그대가 오다 가문을 사관하겠다 해도 말리지 않겠소."


"흐흐흐, 저같은 난쟁이 하나가 어디로 굴러가든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하오나 셋사이님만한 분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여기서 우지테루공을 따라 순사하시느냐, 아니면 새로운 주인을 만나 그 기량을 펼칠 기회를 얻느냐에 따라 천하의 흐름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간스케님, 비록 역량이 부족하여 주군의 가문을 이 지경까지 몰아넣고 말았지만, 소승의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오. 괜한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오. 그대가 떠나는 것은 막지 않겠으나 계속해서 그런 말을 한다면 소승도 그대의 목을 베지 않을 수 없소."


"그렇다면 소인의 목을 걸고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셋사이님의 그 충성을 져버리시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곧은 마음만이 우지테루공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뭐요? 나의 마음이 우지테루공의 목숨을...?"


"지금 오다가 이마가와가에게서 꼭 얻으려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성 몇 채? 그런 것은 군사를 보내 깨뜨리면 손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아니 슨뿌성의 예를 보아도 아시겠지만 깨뜨리기도 전에 이쪽에서 먼저 문을 열고 말 것입니다. 그런 오다 노부히데가 한 수를 접고서라도 반드시 얻고 싶은 것은 바로 셋사이님의 기량."


거침없이 쏟아지는 간스케의 말에 셋사이는 저도 모르게 "으음..."하고 신음을 내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우지테루공의 목숨을 살릴 묘수가 나오는 겁니다. 셋사이님께서 오다 가문을 사관하는 대신 이마가와 가문의 명맥은 잇도록 한다...물론 전과 같이 삼국의 태수와 같은 처치는 기대할 수 없겠습니다만."


이 얼마나 얄밉도록 날카로운 혀을 가진 자인가. 우지테루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오다 가문을 받드는 것 뿐이다, 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 그것도 우지테루가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울부짖고 돌아간 그 다음 날 아침.


"아시겠습니까? 소인은 그저 또 다른 충성의 길이 있음을 알려 드리는 것이옵니다. 여기서 성을 베개삼아 주군과 함께 전사하는 것도 충성, 어제까지의 원수에게 머리를 숙여서라도 주군의 목숨을 구하는 것도 충성이옵니다. 아니, 죽는 것 뿐이라면 그것은 작은 충성, 어쩌면 살아남는 것이 더욱 커다란 충의일지도 모릅니다."




by 오디 | 2008/09/23 08:44 | [천상기] 노부히데의 야망 | 트랙백 | 덧글(8)
[천상기] 노부히데의 야망 #63 - 이마가와 멸망 (1)





히쿠마성 전투 이후의 오다군의 움직임은 간스케의 제언대로였다. 일부 중신들은 총대장인 노부히데가 아직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함부로 군을 움직이는 것을 우려했지만 기요야스가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진다고 강력히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히쿠마성 전투 당시의 오다 - 이마가와 세력 지도



히쿠마성을 지나면 다카텐진성이고, 그 뒤는 바로 이마가와 가문의 거성(居城)인 슨뿌성이 있었다. 아직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간스케의 전략대로 병력을 나누는 순간 갑작스레 슨뿌성이 전선으로 끌려 나온 것이다.


다카텐진성 공략이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포로로 풀려날 때 호언했던 대로 야마모토 간스케가 전력을 다해 맞서왔기 때문이다. 다카텐진성 공략을 맡았던 나가사카 노부마사는 간스케의 계략에 걸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거짓 전령과 우회공격을 끊임없이 펼치는 바람에 노부마사군은 혼란에 휩쌓이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간스케의 그런 노력도 다카텐진성을 오랫동안 구해낼 수는 없었다. 성 안에 남아 있는 병사는 겨우 백 명이 조금 넘는 병사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한 병사로 다섯 배, 열 배에 이르는 공격군을 보름이나 막아낸 것만으로도 놀라운 전과였다.


노부마사군에 의해 혼노마루가 점령되는 것을 뒤로하고, 간스케는 몸을 빼내 히쿠마성으로 달아났다. 처음부터 승산이 적은 싸움이긴 했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입맛이 씁쓸한 간스케였다. 히쿠마성에는 오다군이 포위망을 짜고 있었지만 그 역시 간스케는 가볍게 따돌리고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by 오디 | 2008/09/14 20:27 | [천상기] 노부히데의 야망 | 트랙백 | 덧글(0)
[모굴08] The Giants - 1




모굴, 그러니까 Base Ball Mogul 시리즈는 야구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무슨 게임을 하든 먼치킨 플레이를 즐기는 터라, 이번에도 빅마켓 팀중에서도 가장 빅스러운 New York Giants를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무려 1901년도부터 2008년 현재까지 어느 시즌으로나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모굴시리즈의 강력한 장점 중 하나입니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MLB 문외한인지라, New York Giants가 현재의 New York Yankees의 전신인 줄 알고 골랐단 말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New York Giants는 1958년 San Francisco Giants로 연고를 옮기게 되는군요. (쿨럭) 뭐 그래도 당장 플레이하는데 상관은 없겠습니다만은 사람 기분이란게... 여담입니다만 1883년 창단되었을 때의 이름은 무려 New York Gothams.(폭소) 외야수가 배트맨쯤 되는 겁니까. 갑부 구단주는 부르스 웨인?


아.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1901년 시작할 때 Baltimore Orioles라는 팀이 1903년에 New York Highlanders로 연고 이전을 하고 10년 뒤인 1913년에 무려 New York Yankees가 되는 군요. 아이쿠.








먼저 말했듯이 먼치킨 플레이를 좋아라 합니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시뮬이라고는 하지만 AI라는 것은 어딘가에서는 바보짓을 하게 마련입니다. 모굴같은 경우에는 선수간의 트레이드라든가 FA관리 등에서 좀 어이없다 싶을만큼 관대한(?) 면이 있기 때문에 요것만 잘 이용해도 몇 년 내에 무적팀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답니다. (야)







현재까지 플레이한 기록입니다. 1904 시즌 월드시리즈에서 지역 더비 라이벌인 New York Highlanders에게 패하는 바람에 지구 우승에 머무른 것을 제외하면 8시즌동안 7번 월드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게다가 저 All Stars 선수를 배출한 것 좀 보세요. 좀 삐끗했던 1904 년에도 4명, 1907 시즌에는 무려 13명이 우리 팀에서 올스타가 나온 것이지요. 지가 하고도 정말 어이 상실한 짓이로군요.


만약 실제로 이런 성적을 거둔 팀이 있었다면 아마 MLB는 일찌감치 망했겠지요. -_- 하지만 게임 내에서야 뭐,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요. 음하하.





by 오디 | 2008/09/10 21:48 | [모굴08] The Giants | 트랙백 | 덧글(2)
[천상기] 노부히데의 야망 #62 - 기이한 포로 (3)









"...귀하를 놓아준다면 히쿠마성으로 가서 셋사이를 회유하겠다는 말인가?"


기요야스의 물음에 간스케는 뜻밖에도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본인은 다카텐진성의 수비대장. 이 길로 다카텐진성으로 돌아가 오다의 공격을 막을 준비를 해야지요."


"뭣이?!"


"다이겐 셋사이만한 인물이 그리 쉽게 항복하리라고는 귀하도 생각치 않겠지요? 이마가와의 마지막 성까지 떨어뜨리지 않는 한 셋사이님은 포기하지 않으실 거요. 그만큼 당주 우지테루에 대한 충성...이랄까, 집념은 대단하오."


"크음..."


"여기서 망설일 것은 없지 않소? 이 전투를 구상하면서 귀하들이 이미 생각했던 바를 실행하면 되지 않소?"


"우리가 이미 생각했던 바...라고?"


"이제 이마가와군의 주력은 모두 분쇄된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 병사를 나누어 한 편으로 히쿠마성을 포위하고 한 편으로는 무주공산과 다름없는 이미가와 영지의 성들을 공략하는 것 말이오."


간스케의 말이 기요야스의 머리를 때렸다. 물론 오다가의 장수들 중 누구도 금번 전투만을 고민했을 뿐, 그 후의 전략에 대해서는 바로 직전까지 적으로서 싸웠던 이 자만한 안목을 가졌던 이는 없었다. 히쿠마성을 포위하면서 나머지 이마가와 가문의 영지를 점령할 것 - 말하자면 이것이 군사 야마모토 간스케가 처음으로 오다군에게 내린 군략이었다.


기요야스는 이 자를 석방하기로 결정한다.








묶였던 팔다리를 주무르던 간스케가 문득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던졌다.


"노부히데공의 그 병에는 꿀에 절인 도라지가 잘 듣소이다."


"아니, 귀하가 어떻게 그것을...?"


"흐흐흐, 언제나 총대장을 직접 맡으신다는 노부히데공께서 보이지 않길래, 이만큼 급한 병이라면 이 지방의 풍토병이겠다 싶어서 넘겨짚어 본 것이니 노여워 마시오. 흐흐흐...그나저나 격전을 틈타 본영을 공격했다면 이 전투, 어떻게 됐을지 몰랐겠는걸..."


기요야스는 간스케의 끝모를 지략에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by 오디 | 2008/09/09 09:37 | [천상기] 노부히데의 야망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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